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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벼를 수확했습니다. 6월 초에 모내기를 한 후로 줄곧 논에 물이 잘 차 있나, 빠지지는 않나 하며 논둑을 왔다갔다하던 날들로부터 안녕입니다. 사실 논에 물을 뗀 지는 이미 좀 됐지만요. 시원섭섭한 기분입니다. 황금빛으로 영글어 바람결 따라 사락사락 소리를 내던 풍경도 잠시, 콤바인으로 밀고 간 자리에 밑둥만 남았습니다. 올해엔 논바닥이 잘 말라서 콤바인이 빠지는 일없이 금방금방 진행됐고, 곧장 톤백자루에 담겨 정미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조금 아쉬웠습니다. 고향이 시골인 저는 어릴 적 추수가 끝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마당 가득 널어 말리던 풍경을 기억합니다. 그 풍경과 한몸이 되어 고무래로 이리저리 벼를 뒤섞던 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도 기억합니다. 감상에 불과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쩐지 중요한 경험 하나를 기계와 효율에 빼앗긴 기분입니다. 일이 줄어 편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밑둥만 남은 논 풍경에 허무하다 싶게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가을의 속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을은 수확과 쇠락의 계절입니다. 사라지는 게 당연한 계절입니다. 어느새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여름의 무성함은 내년에야 다시 볼 수 있겠지요. 이제 곧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옵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봄은 봄이고 가을은 가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자연을 극복하는 기술이 많이 발달해 계절의 변화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라는 건 그만큼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사실이 한 번씩 기껍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태어나고 자라고 시들고 죽는, 이런 변화가 삶의 정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갈 것이 가야, 올 것이 오고, 그게 또 가면, 올 것이 다시 오겠지요.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 밑에서 진행되는 어떤 힘을 아직 실감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가을이니 낙엽처럼 땅으로 떨어져 가만히 기다려야겠습니다.

일교차가 심합니다. 건강 살피시길 바랍니다.

 

20231019일 풀무학교 전공부 식구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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