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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마을회관 건물

 

개월마을 - 번화했던 시절.  

 

비가 살짝 살짝 뿌리더니 봄이 일찌감치 왔습니다. 개월마을 농부들은 하우스에서 고추모종을 키우고 노지에 완두랑 감자를 심었습니다. 축분을 가득 실은 트랙터가 논밭으로 부지런히 나갑니다.  

4월이면 마을 야유회를 갑니다. 일정을 의논하러 몇몇이 마을회관에 모였습니다. 소밥 줘야 하니 너무 늦게 돌아오면 안 되고, 그래도 와서 한갓지려면 저녁은 먹고 들어와야 하고, 장어는 기름져서 많이 못 먹으니 회를 먹자, 그 때쯤 벛꽃은 한창일까 동백은 졌을지 등등 얘기하다가, 예전에는 멀리까지도 잘 놀러다녔다고...매일 소밥 줘야 하니 남편들을 놔두고 부녀회만 모여 12일 다녀오기도 했다고 하시네요. 지금의 마을회관이 아니고 언덕 위에 예전 작은 마을회관일 때, 개월 포함 주변 마을 분들까지 다 투표를 하러 오는 투표장으로 쓰였는데, 그 근처에서 부녀회 자금 마련을 위해 커피도 팔았다고. 당연히 아메리카노는 아니고 믹스커피도 아니고, 커피 프림 설탕의 조화로운 커피를요. 그 시절, 마을회관 근처에는 방앗간도 있고 막걸리집도 있고 필요한 왠만한 건 다 있는 가게도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모처럼 햇살이 좋았던 날, 마을 분들이 주문한 홍동농협 소금이 도착하여 마을방송으로 알리고 나서, 오시는 분들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며 마을 분들과 이장님과 얘기 나누다 보니, 그 시절엔 대학생들이 농활도 왔었다고 하네요. 이 작은 마을회관에서도 자고 그걸로 부족해서 몇몇 집에서도 자고, 이집 저집 가서 열심히 일 돕고, 마지막에는 연극도 하고 잔치도 하며 마무리하고, 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경운기에 태워서 보냈다는.

번화했던 우리마을의 한 시절을 상상해 봅니다. 현재 70대 전후인 마을 분들이 한창 젊었던 시절, 마을에 아이들이 와글와글하고 여름이면 대학생들도 오고, 활기찼던 마을 풍경을. 뒤늦게 마을사람이 된 저도 그 시절을 잠시 함께 느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마을 풍경 또한 기억에 잘 담아 둬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글/사진 : <월현리 개월마을> 마을기자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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