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이 피었습니다. 허생원과 동이가 함께 걸었던 운명적인 메밀밭은 아니지만 서정적인 한 편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메밀꽃이 자연재배 텃밭정원에도 피었습니다.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농부가 챙겨온 가을채소 씨앗은 종묘상에서 파는 크기가 고르고 빛깔이 화려한 씨앗과 사뭇 달라요. 상추, 시금치, 아욱, 양파, 쪽파 등 가을 채소를 심기 위해 텃밭정원 농부들이 모였습니다.
옥수수가 한 차례 뜨겁게 살다간 자리에는 우리에게 달콤하고 찰진 옥수수를 선물한 옥수수대가 쓸쓸하게 서있어요. 풀을 모두 베어내고 나니 포슬포슬한 흙이 마치 속살을 보여주는 듯 부드럽습니다. 옥수수대는 억센 뿌리가 달렸지만 뽑지 않고 되도록 잘라주었어요. 그래야 뿌리 주변의 미생물이 다치지 않고 땅속 생태계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으니까요. 미련이라도 남은 듯 단단한 옥수수대 자르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이제 그 자리는 가을채소에게 양보하지만 옥수수는 크고 단단한 씨앗을 남겼으니 미련은 없겠지요.
당근이 제법 자라서 두 번째로 속아주었어요. 속아낸 당근 향이 어찌나 좋은지, 농부는 흙 묻은 손으로 대강 쓱쓱 흙을 털어내고 선 자리에서 당근을 맛봅니다. 겨우 몇 포기 살아남은 배추와 달리 무는 제법 무성하게 자라서 예쁘게 속아주었어요. 초보농부는 이걸 뽑을까 저걸 뽑을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다 갑니다. 허허!
가지, 오이, 고추, 호박, 옥수수, 깻잎, 토마토, 노각, 당근! 오늘 우리가 얻은 자연의 선물이에요. 이렇게 근사한 선물을 직접 손으로 받을 수 있는 농부라서 행복합니다. 더불어 뜻이 닮은 농부들과 함께 메밀꽃 핀 들판에 설 수 있어 고마운 '메밀 꽃 필 무렵'입니다.
- 다음 모임 : 9월 28일 나무날 10시
글_사진: <자연농텃밭정원> 류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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